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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새를 먹다 저자 : 이시유
좌충우돌, 재기발랄, 지구 별 표류기 - 이시유 시집 『죽은 새를 먹다』 이외수 소설가의 마지막 문하생인 이시유 시인이 등단 6년 만에 첫 시집 『죽은 새를 먹다』를 냈다. 이외수 소설가와 절친이기도 한 최돈선 시인은 이시유 시인의 첫 시집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돌한 언어를 구사하여 특이한 시의 구도를 짠다는 일은 쉽지 않다. 거기엔 삶을 응시하는 통찰의 힘이 요구된다. 이시유 시인이 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을 때, 편집자는 이 시인이 지닌 어떤 당돌함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것은 색다름이고, 생경한 시어가 지닌, 낯선 불편함일 수도 있다. 한자의 혼용에 대한 의아한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언어의 요술을 부리는지 아니면 어떤 주술적 힘이 시인에게 작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마음 열어, 한 젊은 시인의 동화 같은 시를 들여다보면, 이 시인의 진가가 은은한 달빛처럼 드러나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 시인의 유치함조차도 가을 서릿발처럼 빛나게 될 것이 아닌가. 병석에 누워 있는 이외수 작가가 이 시집을 받아본다면 어떤 말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문하생 이시유 시인. 이 시집으로 이외수 작가의 영혼이 반짝, 맑은 눈을 틔웠으면 좋겠다.” 시집 해설을 쓴 박성현 시인은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시유 시인의 문장은 기존의 시문법과는 다르다. 언어의 운용도, 상상력의 폭과 넓이도 기존의 정치한 문장과는 사뭇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은 차이일 뿐 시집의 경중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가 어떤 이유로 걷는 자로서의 ‘소년’을 불러냈으며,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다’는 페소아의 경이로운 감각에 이르렀는지, 그 고독한 흑백의 여정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 없다. 더욱이 대상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그러한 열락(悅樂)의 기원도.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의 문장을 읽고 있다. 그가 경험한 시간들에 천천히 다가설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이 또 다른 원근과 지향 속에서 다시 열리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그것뿐이다.” 지구라는 별을 방문한 외계인을 우리는 몇 명 알고 있다. 어린 왕자가 대표적이고, 외모와 달리 귀여웠던 이티(ET)가 있고, 우리의 영웅 슈퍼맨도 있다. 어쩌면 이번 시집을 통해 우리는 또 한 명의 외계 소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시적 화자로 등장하고 있는 소년은 아직 자신이 외계인인 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은연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낯선 문장들 낯선 화법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외계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외계인이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이질감. 그것을 통해 우리는 미처 우리가 모르고 있던 우리 내부의 어떤 세계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또한 차마 발설할 수 없는 은밀한 감정들까지도 시적 화자는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대리 만족을 하거나 대리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이시유 시인의 이번 시집은 한 마디로 “좌충우돌, 재기발랄, 지구 별 표류기”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 이 시집이 독특하고 낯설고 혹은 거칠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순전히 지구 밖에서 바라본 우리의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 안에도 작은 소년이 있냐고 묻고 싶었다, 순수하고 투명하여 후, 불면 차라리 토옥 토옥 나팔꽃 피어날 것 같은 소년이 있냐고 묻고 싶었다, 삶의 구도를 깨치기 전 또르륵 또르륵 맑은 눈동자로 세계를 바라보며 바람 속을 거닐던 소년이 있냐고 묻고 싶었다, 노리개나 슬픔, 절망이나 독사, 하이힐과 극약 그런 것 아니라 다만 토옥 토옥 나팔꽃을 머금고 있는 소년이 있냐고 묻고 싶었다, 세계를 사랑하는 소년이 있냐고… 묻고 싶었다 - 「소년」 전문 이제 지구별에 불시착한 소년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어린 왕자보다 더 독특하고 더 이상하고 더 사랑스러운 소년을 만나서,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
여름 나기를 이야기하는 동안 저자 : 김영희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으로서의 시 쓰기 - 김영희 시집 『여름 나기를 이야기하는 동안』 해설을 쓴 박성현 시인은 “사유는 존재를 말하고 시인은 성스러움을 이름한다”는 하이데거의 말을 빌려와 김영희 시인의 이번 시집을 “성스러운 저녁 빛에 스며드는” 언어라 하였다. 또한 김영희 시인은 “실존하는 삶에서 성스러움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문장으로 일으켜 세운다”라고 말한다. 다소 길지만 박성현의 해설 일부를 옮긴다. 「김영희 시인의 문장은 ‘살아감’이라는 생활-세계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시인에게는 일상이 살아감의 환희와 기쁨이고 또한 성스러움의 장소다. 그의 문장들은 지금-이곳의 삶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으며, 벗어날 생각이 아예 없다. 그 어떤 고귀한 정신도 시인에게는 ‘너머’라는 초월이 아닌 지금-이곳을 향할 뿐이며, 그것은 “어디에 닿겠다는 질긴 생각을 지우면 / 거저 얻어지는 자유와 선택 / 발걸음 닿는 곳이 경이롭다”(「방향의 설계도」)는 문장에서 암시되듯, 생(生)의 최대치를 이끌어내는 진면목이다. “울음을 울어본 사람만이 아는 / 첫날을 물들이는 첫 울음”(「웃는 울음」)도 시인을 비껴가지 않는다. 과연 살면서, 매순간 그 ‘살아 있음’의 경이(驚異)를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그와 같은 사람을 ‘예외적 개인’이라 일컬을 정도니 생각만큼 그리 많지는 않다. 다만, 우리들은 지독한 근시여서 가까이 머무는 햇볕의 맑은 떨림도 보지 못하고, 마음 또한 흐릿하여 먼 숲을 흐르는 바람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만 인정하자. 절기는 더위를 땅 밑으로 끌어내렸다 중력의 자장 속으로 들어가는 치솟았던 감정들과 어느덧 지쳐버린 유한한 모양의 요소들 한때는 무한함을 믿기도 했었던 가령, 사랑이나 희망 따위 여름을 벗어놓은 시간은 고적한 것들을 가을의 문턱으로 부른다 거리로 몰려나온 사람들이 많아 오히려 쓸쓸해지는 처서를 건너는 저녁 변신과 함께 사라져갈 풍경과, 낯선 노래를 주머니 속에 구겨 넣으며 미리 와 있었던 추억처럼 나는 나를 기다린다 ─ 「가을의 문턱」 전문 계절이 물러나고 있다. 입추가 지나면서 서늘해지더니 결국 여름을 밀어내는 것이다. 폭염으로 정점을 찍었던 오후의 태양도, 서서히 찬 기운이 깃들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지시하지 않았지만, 가을의 도래는 필연이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계절의 순환을 지켜보며 시인은 잠시 ‘자기’를 멈춘다. 존재-함의 실존들은 이미 유한하다. 우주를 이루는 그 어떤 것도, 이를테면 ‘시간’이나 ‘공간’ 혹은 ‘순환’이라는 단어 자체도 유한하다. 사물에 앞서 존재하는 형이상학은 없다. 모든 규범과 법칙은 사물의 존재로부터 귀납될 뿐이다. “한때는 무한함을 믿기도 했”던 ‘사랑’이나 ‘희망’ 따위의 감정들도 잠시 멈춘다. 그렇게, 여름이 흐른다. 흘러가며 가을 속으로 사라진다. 시인은 이 순환의 성스러움을 “여름을 벗어놓은 시간”으로 명명한다. 고적한 것들은 모조리 가을의 문턱으로 몰려오고, 서둘러 쌓이고, 천천히 사라진다. 처서를 건너는 저녁이다. 퇴근길에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은 혼자 나와 시청과 정동을 돌아 시립미술관까지 걷는다. 국에 밥을 말아 먹으면서 혼자 저녁 뉴스를 시청한다. 명동의 골목을 따로 흩날리는 은행잎처럼 흐른다. 이상의 집이 있는 서촌에서 효자동까지 다른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걷는다. 제각각, 멈추면서, 혹은 멈춰 선 채로 아주 멀리 바라보면서. “변신과 함께 사라져갈 풍경”에 스며든다. 적어도 그 성스러운 저녁 빛에 스며드는 순간만큼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내가 나타나는 방식이 아닌가.」 박성현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은 “김영희의 이번 시집은 세상 만물에 깃든 성스러움을 밝혀주고 있으며 성소(聖所)로서의 존재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굳이 부연하자면, 김영희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존재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자꾸 무언가를 쓰게 만든다. 소용의 가치는 맨 나중 이야기다”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시집 맨 처음에 배치한 시 「여름」에서는 “햇살 뭉치를 받아든 사람들과 / 슬기로운 여름 나기를 이야기하는 동안” “내 몸은 개펄처럼 / 눅진눅진 포개지며 때론 허물어지며 / 그저 시 한 줄기 바람처럼 일기만을 기다렸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시집의 마지막에 배치한 시 「풍선넝쿨」에서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 끊임없이 표현해야 살아 있는 생이라는 생각에 / 줄기가 흔들릴 때마다” “출렁임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 나약한 존재감을 들키고 마는 나의 넝쿨손 / 안으로 심은 씨앗 하나에 작게 새기는 글은 / 그래도 사랑이라는 심장 하나”라고 얘기한다. 그러니까 김영희 시인에게 있어 시 쓰기는 소위 ‘소용과 효용가치’와는 별개의 일이며, 오로지 오롯이 살아 있는 것들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할 뿐이다. 김영희 시인의 이번 시집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으로서의 시 쓰기”가 무엇인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 저자 : 최삼경
투박하지만 진솔한 예술가들의 속 이야기 - 최삼경 에세이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 - 강원의 화인열전 1』 강원도청 대변인실에서 근무하는 현직 공무원이며 자유 기고가로서 여러 방면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는 최삼경 작가가 신작 에세이집을 펴냈다. “강원의 화인열전 1”이라는 부제가 붙은 에세이집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은 저자가 열여덟 명의 화가 및 조각가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묶은 것이다. 저자는 2013년부터 8년 동안 강원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와 조각가 등 예술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였고, 그들의 삶과 예술에 대한 투박하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틈틈이 이런 저런 매체에 실어왔다. 그중 서른여섯 명의 예술가를 추려서 단행본 원고를 완성하였는데, 원고가 워낙 방대하여 두 권으로 내기로 하였다. 이번에 나온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 - 강원의 화인열전 1』에서는 “권용택, 김명희, 김수학, 김춘배, 박황재형, 백윤기, 서숙희와 신대엽, 안종중, 이광택, 이수, 이형재, 임만혁, 정춘일, 정현우, 최창석, 홍귀희, 황재형” 이상 열여덟 명의 작가를 다루고 있다. 내년에 나올 〈화인열전 2〉에서는 “강신영, 길종갑, 김예진, 김운성, 김주표, 김진열, 박환, 백중기, 서현종, 이장우, 이재삼, 임근우, 임재천, 전수민, 전영근, 정두섭, 최영식, 황효창” 등 열여덟 명의 작가를 다룰 예정이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처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는 심심 건조했던 사무실에서의 해방이라는 사적인 즐거움에 내심 마음이 가벼웠지만,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그렇게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붓을 놓지 못하는 그네들의 삶에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였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 시마(詩魔)에 사로잡히듯 어쩌면 그네들도 화마(畵魔)에 포박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일생을 어쩌지 못하는 무병 같은 화업이 또한 그들의 삶과 세계를 어려우나마 버티게 해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등짐이 꼭 짐만이 아니라 길을 함께 가주는 반려의 힘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 척박한 땅에서 예술을 하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합니다. 다만의 박수와 관심으로 그 길이 어찌 다 꽃밭이고 봄 길이 되겠습니까만 그저 허허한 마음이라도 담아 응원을 보냅니다.” 저자의 말처럼 이 땅에서 예술을 업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술을 하기에는 척박한 사회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그런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위로와 위안을 받지만, 정작 예술가 본인과 그 가족들은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돈도 안 되는데, 그들은 왜 일생을 걸고 예술에 온몸을 던진 것일까. 예술가들 스스로는 자신의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고, 스스로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책에 나오는 예술가들의 답변은 제각각이다. 그 제각각의 이야기를 듣는 게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라고 하겠다. 하지만 공통의 정서도 있다. 즐거움이다. 완성된 작품이 나오기까지 고된 과정마저도 그들은 즐겁다 한다. 왜 즐거운지 어떻게 즐거운지는 물론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를 찾아 읽는 것 또한 이 책이 주는 재미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예술 평론가들이 쓴 책처럼 학구적이거나 딱딱하지 않다. 스스로 예술에 문외한이라고 밝힌 저자는 “예술에 문외한이니까 오히려 일반 독자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물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예술가의 삶이 물씬 풍기는 이유다. 또한 이번 책은 글도 글이지만, 작가별로 열 편 이상의 작품들을 크게 크게 배치한 것이 눈에 띈다. 마치 도록을 보는 듯하다. 굳이 미술관을 가지 않더라도 책을 통해 충분히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독자를 배려한 편집이 눈에 띈다. 예술가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특히 강원도에서 어떤 예술가들이 어떤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