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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가 등고선을 그리며 날았다 저자 : 김희자
서정적 온기에 담긴 그리움과 울음의 미학 - 김희자 시집 『산새가 등고선을 그리며 날았다』 김희자 시인이 일흔의 나이에 첫 시집 『산새가 등고선을 그리며 날았다』를 상재했다. 김희자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스스로를 “아버지에게, 남편에게 / 대물림 된 모멸의 시간”(「흐린 그 여자」) 속에 갇힌 여자라고 명명하며 물성에 잠식되어버린 우리의 삶을 고찰한다. 그가 칠십 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들여다본 세상은 “매번 얼굴을 바꾸는 전전긍긍”(「전전긍긍 수집가」)으로 전전긍긍하고, “썩은 바다가 쓰레기의 양분으로 / 성장하면 너덜거리”(「부산역, 여름」)리고, “시린 절망을 짊어진”(「주전자의 통증」) 채 걷다가 마침내 무거운 짐을 “울컥울컥 게워내”(「겨우살이」)고, “내 일생을 위해 누구의 일생을 갉아 먹고”(「호랑 배추벌레」), “허구의 창살만 만들기만 하고”(「살이 몇 개나 삐져나와」), “노동의 족쇄 헐떡이는 호흡으로 쉼 없어 흘러”(「커피 향에 스며들다」)가고, “탐욕과 비리가 / 즐비”(「세월을 삭이다」)하고, “흙탕물 위에 비양심이 엉켜 내려”(「타이밍」)오는 그런 그야말로 “백내장을 앓는”(「여름에 걸려」) 세상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런 욕된 세상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연후에 자연과 함께했던 영성의 삶을 함께 기억해내자고 그 속에서 함께 삶을 치유하자고 권한다. 그러니 그의 시집을 읽어가다보면 “내 귀를 스켜 어깨를 토닥”(「손에 묻은 훈계」)이는 낙엽과 “새끼 잃은 어미 소 울음”(「울음의 온도를 발견하다」)이 비로소 들리고, “빈 어깨를 만지는”(「내 전생에는 몇 평의 밭이 있었을까」) 아버지가 보이고, “알 수 없는 이름의 풀과 꽃들”(「실상사를 가다, 일요일」)이 어느새 경전이 되고, 끙끙 앓게 했던 몸살마저도 “졸졸거리며 나를 일으켜 세”(「이빨 위에 떠 있는 몸살」)우게 될지 모르겠다. 김희자 시인의 첫 시집에 대해 유성호 평론가는 “서정적 온기에 담긴 그리움과 울음의 미학”이라 평하며 이렇게 말한다. “김희자 시인의 첫 시집 『산새가 등고선을 그리며 날았다』는 오랜 시간 속에 웅크리고 있던 그리움과 울음의 에너지를 서정적 언어로 갈무리한 섬세한 기억의 축도(縮圖)다. 시인 스스로는 ‘열정의 객기에 끌려온 시들’(「시인의 말」)이라고 겸사(謙辭)를 했지만 그 저류(底流)에는 삶에 대한 애착과 자유로움, 기억의 선명함과 복합성,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모두 출렁이고 있다. 그만큼 김희자의 시는 삶의 내력을 회상하고 해석해가는 속성을 강하게 띠면서 서정시의 근원적 창작 동기가 자기 투영과 성찰에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로 다가온다.” “김희자의 시는 일관되게 서정적 차원에서 시작되고 완결된다. 그녀의 시는 인간 내면의 파동과 그것을 감싸는 언어에 의해 비로소 형태를 얻어간다. 서정시의 존재 이유가 삶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궁극적 긍정이라는 점에서, 김희자 시의 삶에 대한 신뢰와 긍정은 그녀가 구축해가는 서정적 차원의 확고한 밑거름이 되어준다. 또한 우리 시대가 문학조차 공공연히 상품 미학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이러한 질문과 긍정의 힘은 서정시의 역설적인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선명하게 알려준다. 또한 김희자의 시는 우리로 하여금 삶의 상처들을 알아가게끔 해주면서도 삶의 본래적 지향인 존재론적 그리움을 느끼게끔 해주는 세계이다. 이 모든 것을 일러 우리는 시간예술로서의 서정시가 남겨가는 ‘주름’과 ‘그리움’의 세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이번 첫 시집을 통해 삶에 대한 균형과 조화의 감각을 종내 보여준 것이다. 오랜 시간의 결을 담은 실존적 고백을 남겨주었고 세계와 사물로 확장되어가는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 안에 담긴 사유와 감각이 단연 아름답고 충일하고 애잔하고 깊다. 이제 김희자 시인은 이렇게 아름다운 첫 시집을 딛고 일어서면서 더 견고하고 깊어진 서정적 언어와 표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더 무슨 말을 보탤 것인가. 그저 시집 속의 시 한 편 읽는 것으로 충분하겠다. 긴 겨울잠을 자느라 따뜻한 햇살도 무시했더니 이상한 소문과 수런거림에 문밖을 나선다 사방에 바람난 여자들 이야기 성급한 산수유는 순산을 하고 복사꽃은 누구와 눈을 맞추고 꽃단장에 바쁘고 매화는 화사한 웃음으로 순결한 척 시치미 떼고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목련은 불룩한 배를 안고 소문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볼록볼록 벚나무는 몇 쌍둥이가 나올까 까만 눈을 깜빡거리고 들판에 나가 보니 모두들 소문을 퍼 나르는 삽날 즐비하고 하늘거리는 아지랑이 나에게 추파를 던지고 갑자기 볼이 붉어진 가슴은 소문에 나도 들추어질까 속치마 - 「속치마」 전문 김희자 시인의 첫 시집 『산새가 등고선을 그리며 날았다』를 읽고 있다면 조심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감추고 싶었던 당신의 속치마가 들추어질지도 모르니까. -
녹색모자 좀 벗겨줘 저자 : 둥시
개천에서 용이 되려한 삼 대에 걸친 운명 탈출기 - 둥시(東西) 장편소설 『녹색모자 좀 벗겨줘』 위화(余華)와 함께 중국 현대 소설을 이끌고 있는 둥시(東西)가 중국에서 2015년 출판한 장편소설 『운명 바꾸기(纂改的命)』가 6년 만에 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이영구 명예교수와 이민숙 교수가 공동 번역한 한국어판은 『녹색모자 좀 벗겨줘』로 원작의 제목을 바꾸고 ‘농민공 왕창츠의 파란만장 운명 탈출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한국어판의 제목을 ‘녹색모자 좀 벗겨줘’로 바꾼 것은 ‘녹색모자’가 중의적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서 녹색은 낮은 계급, 하층민을 뜻하는 색으로 인식돼왔고, 중국에서 “따이 뤼 마오쯔(戴?帽子, 녹색모자를 쓰다)”라고 하는 말은 “당신의 아내가 바람피우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중국에서 녹색과 녹색모자 착용을 터부시하는 이유다. 소설을 읽어보면 왜 한국어판 제목이 ‘녹색모자 좀 벗겨줘’인지 금방 알게 된다. 소설은 왕창츠와 그의 부인 허샤오원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왕화이(왕창츠의 아버지)-왕창츠-왕다즈(왕창츠의 아들)에 걸친 ‘농민공 계급’이라는 밑바닥 인생 탈출기를 그리고 있다. 최하층민인 농민공으로 태어난 왕화이는 아들만큼은 농민공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왕창츠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인데, 다행히 왕창츠는 공부를 잘했다. 대학입학능력시험에서 커트라인보다 20점이나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낙방이다. 커트라인보다 20점이나 높게 받은 아들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왕화이는 항의를 하기 위해 아들 왕창츠를 데리고 교육청에 간다. 왕창츠는 가기 싫었지만 억지로 끌려간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이들 부자에게 닥칠 비극의 시작이었다. 왕화이는 항의를 하다 교육청 건물에서 떨어져 전신이 마비되고, 왕창츠는 허샤오원과 결혼하여 농촌을 떠나 도시 건설 현장의 잡부가 되고, 먹고 살아야 했던 왕창츠는 아내 허샤오원이 마사지샵에 나가 몸을 파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는다. 하지만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왕다즈만큼은 자신과 같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왕창츠. 그런 점에서 왕창츠도 아버지 왕화이와 다르지 않다. 왕창츠는 아내 허샤오원 몰래 돈과 권력을 가진 원수 린쟈보의 집에 아들 왕다즈를 보내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허샤오원은 왕창츠 곁을 떠난다. 돈과 권력의 지닌 린쟈보의 양자가 된 다즈는 어엿한 남부럽지 않은 청년으로 자라고, 린쟈보는 어느 날 아들 린팡성(왕다즈)의 친부가 왕창츠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린쟈보는 왕다즈가 린팡성으로 계속 살게 하려면 왕창츠가 세상에서 없어지는 수밖에 없다고 제안한다. 물에 빠져 죽은 시체가 인양되었다. 왕창츠였다. 아들의 유골함을 받은 왕화이. 무당이 된 아버지 왕화이는 아들 왕창츠의 천도제를 지내주면서 아들이 환생할 것을 예언한다. 경찰대학을 졸업하여 법죄수사대에 들어간 린팡성은 미제사건으로 남겨진 왕창츠의 죽음을 새롭게 조사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진상을 파악하지만 사건 파일을 강물에 던져버린다. 왕창츠가 뛰어내렸던 바로 그곳이었다. 왕화이-왕창츠-왕다즈로 이어지는 이 삼 대의 기막힌 운명 탈출기는 과연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판단은 순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2019년에 한국 영화 〈기생충〉이 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저자인 둥시(東西)는 너무 깜짝 놀랐다고 한다. 2015년 소설을 출판했지만, 2013년 처음 소설을 구상할 때 ‘기생(寄生)’ 혹은 ‘기생초(寄生草)’로 제목을 염두에 두었었고, 자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영화감독과 대본을 논의하던 와중에 한국 영화 〈기생충〉이 나왔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한국 영화 〈기생충〉과 본인의 소설이 추돌하면 어쩌나 온갖 상상을 다했는데, 다행히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나서 본인의 소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흥미로운 이야기다. 봉준호 영화 〈기생충〉과 비교하면서 『녹색모자 좀 벗겨줘』을 읽는다면 또 소설의 또 다른 재미를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죽은 새를 먹다 저자 : 이시유
좌충우돌, 재기발랄, 지구 별 표류기 - 이시유 시집 『죽은 새를 먹다』 이외수 소설가의 마지막 문하생인 이시유 시인이 등단 6년 만에 첫 시집 『죽은 새를 먹다』를 냈다. 이외수 소설가와 절친이기도 한 최돈선 시인은 이시유 시인의 첫 시집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돌한 언어를 구사하여 특이한 시의 구도를 짠다는 일은 쉽지 않다. 거기엔 삶을 응시하는 통찰의 힘이 요구된다. 이시유 시인이 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을 때, 편집자는 이 시인이 지닌 어떤 당돌함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것은 색다름이고, 생경한 시어가 지닌, 낯선 불편함일 수도 있다. 한자의 혼용에 대한 의아한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언어의 요술을 부리는지 아니면 어떤 주술적 힘이 시인에게 작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마음 열어, 한 젊은 시인의 동화 같은 시를 들여다보면, 이 시인의 진가가 은은한 달빛처럼 드러나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 시인의 유치함조차도 가을 서릿발처럼 빛나게 될 것이 아닌가. 병석에 누워 있는 이외수 작가가 이 시집을 받아본다면 어떤 말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문하생 이시유 시인. 이 시집으로 이외수 작가의 영혼이 반짝, 맑은 눈을 틔웠으면 좋겠다.” 시집 해설을 쓴 박성현 시인은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시유 시인의 문장은 기존의 시문법과는 다르다. 언어의 운용도, 상상력의 폭과 넓이도 기존의 정치한 문장과는 사뭇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은 차이일 뿐 시집의 경중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가 어떤 이유로 걷는 자로서의 ‘소년’을 불러냈으며,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다’는 페소아의 경이로운 감각에 이르렀는지, 그 고독한 흑백의 여정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 없다. 더욱이 대상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그러한 열락(悅樂)의 기원도.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의 문장을 읽고 있다. 그가 경험한 시간들에 천천히 다가설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이 또 다른 원근과 지향 속에서 다시 열리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그것뿐이다.” 지구라는 별을 방문한 외계인을 우리는 몇 명 알고 있다. 어린 왕자가 대표적이고, 외모와 달리 귀여웠던 이티(ET)가 있고, 우리의 영웅 슈퍼맨도 있다. 어쩌면 이번 시집을 통해 우리는 또 한 명의 외계 소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시적 화자로 등장하고 있는 소년은 아직 자신이 외계인인 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은연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낯선 문장들 낯선 화법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외계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외계인이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이질감. 그것을 통해 우리는 미처 우리가 모르고 있던 우리 내부의 어떤 세계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또한 차마 발설할 수 없는 은밀한 감정들까지도 시적 화자는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대리 만족을 하거나 대리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이시유 시인의 이번 시집은 한 마디로 “좌충우돌, 재기발랄, 지구 별 표류기”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 이 시집이 독특하고 낯설고 혹은 거칠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순전히 지구 밖에서 바라본 우리의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 안에도 작은 소년이 있냐고 묻고 싶었다, 순수하고 투명하여 후, 불면 차라리 토옥 토옥 나팔꽃 피어날 것 같은 소년이 있냐고 묻고 싶었다, 삶의 구도를 깨치기 전 또르륵 또르륵 맑은 눈동자로 세계를 바라보며 바람 속을 거닐던 소년이 있냐고 묻고 싶었다, 노리개나 슬픔, 절망이나 독사, 하이힐과 극약 그런 것 아니라 다만 토옥 토옥 나팔꽃을 머금고 있는 소년이 있냐고 묻고 싶었다, 세계를 사랑하는 소년이 있냐고… 묻고 싶었다 - 「소년」 전문 이제 지구별에 불시착한 소년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어린 왕자보다 더 독특하고 더 이상하고 더 사랑스러운 소년을 만나서,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