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시·에세이

길이 흐르면 산을 만나 경전이 된다

  • 저자 : 정규범
  • 출판사 : 달아실출판사
  • 발행일 : 2021년 03월 30일
  • 페이지 : 156면
  • ISBN : 9791188710966
  • 정가 : 10,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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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과 속도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차(茶) 한잔
- 정규범 시집 『길이 흐르면 산을 만나 경전이 된다』

제6회 황금찬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정규범 시인의 첫 시집이다. 다섯 개의 테마-꿈, 사랑, 여정, 성찰, 귀결-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 대해 정규범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이렇게 얘기한다.

“일상적 언어에서 빠져나가는 뉘앙스를 소환시켜 생명을 불어넣는 길, 시대의 어둠을 보고 펜을 현재의 암흑에 담그며 써 내려가는 길, 어둠 속에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빛을 포착하는 언어들의 얼개를 짓는 길, 그 길을 따라 흐르려 했다. // 동시대인으로서 자연(山)이 흘려주고 인간이 놓쳐버리는 비의(秘意)를 찾아내어 맑게 구워 보존하고 싶었다. // 나의 詩, 나의 이 작은 부끄러움이 작은 것의 중함과 소외됨의 귀함과 어둠 속의 빛을 담아내어 물처럼 자연스레 흐르는 시를 나르는 날갯짓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한편 복효근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규범 시인의 시 쓰기는 ‘잃어버린 자연 잃어버린 코드’를 찾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그가 위치하는 곳은 ‘맑은 어둠 속’이다. 말하자면 빛과 어둠의 경계이다. 해탈과 자유를 갈구하되 그는 어둠 속에서 고뇌와 고통을 기꺼이 거부하지 않는다. 그것이 절대자유 혹은 해탈을 향한 ‘우화’의 전제임을 알기 때문이다. ‘회색이 투명으로 익어가는’ 고치집 속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비가 되기 전 고치집이 ‘순결한 흰 집, / 농축된 영혼이 고인 성역’이듯이 그의 시는 우화의 경계에서 지순한 꿈을 꾼다. 유난히 ‘영혼’이라는 시어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자연 속에 감추어진 삶과 사랑과 우주의 비의를 찾아 헤매는 고행자의 영혼이다. 가릉빈가처럼 영생을 찾아 비상하며 ‘채광’하는 구도자의 작업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그에게 시 쓰기는 일종의 정화의식이다. 함께하다 보면 어느새 태아가 그러하듯이 빛이 전하는 정갈한 영혼을 경험하게 된다.”

또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오민석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 시집은 물과 바람과 빛과 흙이 어우러져 우주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정규범의 작품들은 이 세상의 본질, 근원, 시원, 즉 아르케(arche)가 불, 공기, 물, 흙이라 믿었던 고대 이오니아(Ionia)의 자연 철학자들을 연상케 한다. 제목을 보라. 길이 흘러 산을 만나 경전이 되다니. 그의 시들은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경계를 넘어 서로 섞이고 스며들어, 거대한 ‘하나’를 이루는 풍경의 기록이다.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는 아르케의 4대 원소를 넘어 그것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였다. 그가 볼 때 불, 공기, 물, 흙은 따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끌어당기거나(사랑) 서로 밀어내면서(다툼) 움직인다. 이 운동성이 세계를 만든다. 프로이트가 본능을 에로스(사랑 본능)와 타나토스(죽음 본능)로 나눈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이치이다. 에로스가 서로를 당기는 에너지라면, 타나토스는 서로를 분절시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정규범은 세계를 이루는 이 힘들의 관계, 그리고 운동성에 주목한다.”

“이 시집의 후반부에 나오는 다음의 시는 우주와 자연과 시가 어떻게 동일한 원리로 가동되는지 잘 보여준다.

우주의 자서전을 찾아 읽고 숙성시키며 그려내는 것,
궁수자리 A가 지상에 놀다간 흔적인 크레바스를 엿보는 것,
달빛이 모래톱에 스며드는 시간을 빼앗아 하늘 위로 걸어보는 것,
바람과 파도가 부딪칠 때 그들의 정체성을 파보는 것,
누에가 그리는 꿈의 문체를 훔쳐내는 것,
허공의 기울기로 하늘의 심장을 재보는 것,

우주의 심미안으로 사개맞춤을 짜보는 것,

그리하여
그런 생각들을 비축할 수 있는 고비考備를
시의 사원에서 키우는 것,

나의 꿈,
나의 사랑,
나의 시.
- 「버킷 리스트」 전문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 하나의 야생화에서 천국을 보며 / 손바닥 안에서 영원을 본다’던 시인(윌리엄 블레이크 W. Blake)처럼, 정규범은 ‘달빛’과 ‘모래톱’에서 ‘우주의 자서전’을 읽는다. 그는 ‘누에가 그리는 꿈의 문체를 훔쳐내는 것’을 소망한다. 그런 ‘시의 사원’이 바로 이 시집이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온통 가벼움으로 넘쳐나고, 쓰고 버려진 일회용 쓰레기들로 가득 찼다. 무거운 것, 진지한 것, 영원한 것 따위는 용도 폐기된 지 오래다.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거나 세상의 본질(本質), 삶의 비의(秘意) 따위는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다. 문학이라고 해서, 詩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한때 세상의 본질을 다루고 삶의 비의를 살폈던 시인들마저 자의반 타의반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대중의 입맛이라는 시류에 영합하려 하고, 인기를 좇으려 할 뿐이니, 이제는 문학도 시도 일회용 인스턴트 상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러한 때, 정규범 시인이 발칙하게도 시류에 반해도 너무 반하는 시집을 들고 나온 것이다. 무모한 것일까? 용감한 것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래서 나는 이번 시집을 응원한다. 시는 응당 그래야 하는 거니까. 과속으로 질주하는 삶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것,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 그런 게 시의 역할이니까. 속도가 붙은 삶은 결코 “길이 흐르면 산을 만나 경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법이니까.
삶의 속도에 지쳤거나 인스턴트커피와는 다른 깊은 향과 울림이 있는 차(茶)를 원한다면 이 시집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