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실시선

입술을 줍다

  • 저자 : 금시아
  • 출판사 : 달아실출판사
  • 발행일 : 2020년 08월 30일
  • 페이지 : 148면
  • ISBN : 9791188710744
  • 정가 : 8,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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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배후를 더듬는 말들, 미지의 탐험
- 금시아 시집 『입술을 줍다』

해설을 쓴 박성현 시인은 금시아 시인의 이번 시집을 “돌 속의 새 발자국 혹은 ‘독백’으로 축성된 반(反)-문장의 성소”라 명명하면서 이렇게 평한다.

“금시아 시인은 대상과 사건을 시적으로 변용하기 직전의 갑작스러운 멈춤을 ‘독백’으로 규정하는데 이것은 시인 특유의 방법적 시 쓰기의 한축을 형성한다. 그 ‘멈춤’은 절대적인 감각의 확장이며, 감각을 이미지로서 구원하는 확실한 절차다.
(…중략…)
‘죽음’과 ‘삶’이라는 돌이킬 수 없고, 게다가 불가항력인 두 세계는, 이제 시인의 손끝에서 하나의 세계로 통합된다. 아주 느리게 걸으면서 주위를 조금씩 흡입하고 산발하듯이 그는 두 개의 이질적인 양태들을 대칭하는 것이다.
(…중략…)
금시아 시인에게 ‘독백’이 생성되는 장소는 ‘무당집(「부절符節」)’과 같은 장소의 바깥이다. 그곳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개의 뚜렷한 대칭조차도 비켜 있는 경계로써 마을의 온갖 반(反)-문장들이 소문으로써 흘러드는 저지대이기도 하다.
(…중략…)
문장을 ‘문장이 아닌 것’으로 돌려세워 낯선 공백과 행간을 만드는 것처럼, “눈雪 없는 나라, 이디오피아에 / 펄펄 눈이 온다”(「이디오피아」)와 같은 비현실적 발화(發話)를 통해 시인은 세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한편 손택수 시인은 이번 시집을 이렇게 얘기한다.

“사물에 시선을 비끄러맬 때 사물은 변화한다. 그냥 돌이 아니라 ‘새의 한쪽 발이 빠져 있는’ 반복 불가능한 하나의 감각적 사건으로서의 돌이 된다. 그 놀라운 일회적 마주침을 시인은 “생략된 비밀들이 참 뾰죽뾰죽하다”(「돌 속의 새」)고 했다. 소진되고 마모된 일상의 평면으로부터 융기하고 침식한 삶의 주름들을 ‘뾰죽뾰죽’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솜씨가 청신하고 자상하며 또한 날렵하고 애잔하다. 흐릿해진 존재들과 사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위해 잃어버린 입술을 회복시켜주는 이 극진한 노래야말로 우리 시의 입술이 아닐까. 「한 잎의 온도」에서 말한 “측정 불가능한 수치 밖의 온기”가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그림자는 정직하다.

다리 안쪽의 남자가 난간을 반쯤 넘어간 그림자를 붙잡고 있다. 그림자가 다리 밖으로 반쯤의 힘을 버렸는데도 난간 안쪽의 남자는 왜 저리 버둥거릴까. 반쯤 경계에서 혼신의 힘으로 평상복과 수의의 그림자를 짓고 있는 두 세상의 욕망. 위태롭게, 다리 밖의 그림자는 다리 안쪽의 남자를 마치 몇 번의 생을 따라온 전생처럼 돌아보고 다리 안쪽의 남자는 이번 생애까지 쫓아온 자신의 몇 번이나 헛디뎠던 전생인 양 다리 바깥의 그림자를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다.

그림자를 잡아다가
작으면 늘이고 크면 자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정답,
다리가 길거나 짧거나
침대의 선택은
오늘이 내민 패의 전부일 뿐인데
그림자를 자를수록 예의들 가지런해진다.

천칭 저울 위에서 기우뚱거리는
난간의 균형과 불균형은
내 어떤 하루의 슬픈 자화상일까.

오늘의 그림자는 귀가 너무 얇고
내 그림자는 예의를 모르고
한 쌍의 나비,
난간 모서리에서 아슬아슬 짝짓기를 하고 있다.

저것은 그림의 그림이다.
- 「그림의 그림」 전문

두 사람의 평가에 덧붙여 이번 금시아 시집의 또 한 특징을 말하자면 “시인의 예민한 촉수를 통해 세계의 배후를 들여다보는 데 있다”라고 할 수 있겠다. 가령 그의 시 「그림의 그림」처럼 시인은 예민한 촉수로 드러난 물상(物像)이나 물상(物象)의 배후를 더듬는 것이다. 그런 시인의 촉수를 통해 우리는 드러나지 않은 세계의 혹은 사태의 비의(秘義)를 함께 더듬어볼 수 있는 것이니, 뜻하지 않은 세계의 진경이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니, 이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일이기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