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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모르는 저쪽

  • 저자 : 허림
  • 출판사 : 달아실출판사
  • 발행일 : 2020년 09월 20일
  • 페이지 : 112면
  • ISBN : 9791188710768
  • 정가 : 8,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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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적인 언어로 빚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 허림 시집 『누구도 모르는 저쪽』

김인자 시인은 이번 허림 시인의 시집 『누구도 모르는 저쪽』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따스하다. 힘을 뺀 순정한 시어들이 그가 초식동물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시편들은 옛사랑을 노래해도 어제 헤어진 애인처럼 독자를 애끓게 한다. 좋아하는 이에게 나직이 읊조리듯 하는 시, 어떤 무거움도 깃털처럼 속삭여 주는 시, 그러나 오래된 와인처럼 시집을 덮고 돌아서면 쉬이 가시지 않는 취기로 어디였더라 다시 찾아 음미하게 되는,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살에 박히는 시, “구멍 난 양말 꿰매는 저녁이다 / 버려도 좋으련만 이번만 신고 버리자 / 버리자고 다짐하면서 사는 날들” 시인은 자신의 오막 ‘누구도 모르는 저쪽’에서 “지금 외로워할 수도 슬퍼할 수도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텅 빈 탓”이라고 독백한다. 감히 누가 그의 초월을 흉내 낼 것인가.”

해설을 쓴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또한 이번 시집을 이렇게 얘기한다.

“이 시집의 계곡마다, 들판마다, 절벽마다, 사랑이 분분(芬芬)하다. 그러나 그 향기는 외롭고, 쓸쓸하고, 슬프다. 그것은 사랑이 바로 지금, 여기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멀리 있는 부재이며, 유령처럼 지금, 이곳을 떠돈다. 그것은 없어서 더 외롭고, 없어서 더 간절하다. 부재의 사랑이 확인해주는 것은 지금, 이곳의 ‘텅 빔’이다. 그러므로 허림의 시는 ‘텅 빈 내’가 부르는 ‘빈자리’의 노래이다.”

이런 평가에 덧붙여 이번 허림 시집의 눈에 띄는 특징을 말하자면 “허림 시인이 마침내 그만의 언어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북방의 토속적이고 향토색 짙은 서정시 하면 누구든 백석을 떠올리지만, 허림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백석과는 또 다른 지점에서 자신만의 봉우리를 쌓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령 해설을 쓴 오민석 교수는 이를 두고 이렇게 얘기한다.

눈이 온다
오막은 눈이 내려 하이얗게 깊어진다
온 사방이 눈으로 깊어지면
옛날에 옛날에 하던 이야기로 하얗게 밤 새운다
열두 판 뻥을 쳐도 밖은 눈으로 환하다
뒷버덩 지은이가 토끼길을 따라 버덩말 내려와 하루를 논다
굽굽한데 난치나무국수를 할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덩말 엄씨는
굵은 멸치에 막장을 풀어 시래기국 끓이고
방씨와 설설 물이 끓는 지북솥 우에 분틀을 건다
난치나무 갈구 한 대접에 멧옥씨기가루 열 대접쯤 섞어
반죽을 치댄다
엥간하다 싶을 때 시래기장국 맛이 우러나고
마을 형수들이 반죽 덩어리를 분틀에 넣으면
헐렁수케 같은 서넛이 매달려 눌러댄다
미끈덩 가락이 빠지지 못하면 온갖 야한 농담으로 놀려먹는다
시래기국내가 소문처럼 동네로 퍼지면
버덩말 이모가 눈을 맞고 들어서고
소식없던 살둔 홀애비도 별일 없냐고 전화가 온다
그러면 백씨는 심이 딸려 분틀 못 누르겠다고 비호처럼 달려오란다
그새 노루하고 곰이 매달려 첫물을 빼
시래기국에 말아 한 그릇 비운다
이 맛을 어디서 보겠노
또 차례를 기다리는데
눈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길을 지운다

참 잘 온다 그지
-「뭔 맛이래유」 전문

“백석의 「여우 난 곬족」이 평안도 음식과 사투리로 써진 농경 공동체의 풍속을 그려냈다면, 이 시는 강원도 언어로 따뜻하고 풍성한 공동체의 모습을 재현한다. 독특한 이름의 강원도 음식들, 그것을 함께 나누는 정겨운 공동체의 삶 위로 풍성하게 눈이 내리고, ‘참 잘 온다 그지’라는 추임새까지 들어갈 때, 오직 그 지역에서만 가능한 정념이 풍성하게 살아난다. 허림은 강원도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체화하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보편 문화의 중요한 구성물인 지역 문화 텍스트를 생산하는 귀한 일꾼이 될 가능성이 크다.”(오민석)

이번 시집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문학과 예술의 영원한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을 가장 토속적인 언어로 풀어낸 시집”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