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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목숨

  • 저자 : 신승근
  • 출판사 : 달아실출판사
  • 발행일 : 2020년 09월 30일
  • 페이지 : 144면
  • ISBN : 9791188710775
  • 정가 : 8,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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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느려질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신승근 시집 『나무의 목숨』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을 한 명만 꼽으라면 도무지 꼽을 엄두가 나지 않겠지만, 강원도 정선을 대표하는 시인을 한 명만 꼽으라면 당연히 신승근 시인을 꼽겠다. 그런 신승근 시인의 신작 시집 『나무의 목숨』을 두고 최돈선 시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렇게 가슴 저린 시를 나는 본 적 없다. 이렇게 온 생애가 걸린 시를 나는 본 적 없다. 농사를 지으면 그게 시지 뭐냐고, 오래 오래 시를 놓았던 신승근 시인. 그에게 시가 왔다. 재작년 『저 강물 속에 꽃이 핀다』를 펴낸 후, 그의 가슴엔 나무가 자욱이 자랐다. 그는 굴참나무 한 그루로 노을 속에 앉아 있거나, 늦은 가을 저녁이면 아궁이에 쪼그려 앉아 고사목을 태우거나, ‘굴뚝을 빠져나온 나무의 한 생’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자기들 숲으로 되돌아가는’ 나무의 영혼을 묵상하듯이. ‘나무와 나무 사이의 빈 공간’에 담긴 그리움은 무엇일까. 한 나무의 목숨이 다른 한 나무의 목숨으로 건너가는 그 빈 공간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시인은 생각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이 시집에 실린 한 편 한 편이, 살아온 나무, 살아갈 나무, 언젠가는 한 줄기 연기로 사라질 나무의 생이기에 더욱 그 깊이를 모르겠다. 다만 시집에선 ‘어둠도 발이 시리다며 방문을 아주 닫진 말라는 할머니’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릴 뿐이다. 담담하나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무심하나 그 따스함이 차가운 어둠조차 녹여낼 듯한데…. 이 시들을 읽노라면 난 이름 모를 풀꽃이 되어도 좋겠다. 겉으론 노을빛으로 아름다이 빛나지만, 속으론 푸른 울음의 강이 되어 흘러도 그냥 그대로 난 좋겠다.”

이름 모를 풀꽃을 만나더라도
굳이 이름을 알려 하지 마세요

누군가 풀꽃들의 이름을 모른다 해서
너무 나무라지도 마세요
그러는 당신은 이웃집 아이들 이름을
얼마나 많이 알며 살았나요

아래층 위층 이웃들은 모르고 지내면서
풀꽃들 이름 좀 몰랐다고
핏대 세우지 마세요
당신이 풀꽃들의 이름을 알아가면서
사라지는 꽃들이 더 많아졌어요

이름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두세요
당신이 관심을 두지 않는 만큼
이름 모를 풀꽃들은 다른 풀꽃들과 더불어
더 행복해질 거예요
- 「이름 모를 풀꽃」 전문

인위(人爲)의 문명이 결국 지구를 폐허로 만들고 있음은 이미 지구 곳곳에서 온갖 자연재해로 온갖 질병으로 그 징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신승근 시인의 이번 신작 시집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우리가 앞으로 삶의 태도와 삶의 방식을 어떻게 전환해야 하는지, 사람과 자연이 어떤 방식으로 함께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이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 시집은 ‘생태시’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것은 이 시집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시집 해설을 쓴 박호영 교수는 또한 이번 시집을 이렇게 평한다.

“그가 어떤 계기로 노장이나 불교에 관심을 기울였는가는 확실히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부터 드러냄보다는 스며듬을 좋아했다’는 그의 첫 시집 후기의 언급이나, ‘자신을 방기(放棄)하면서, 남들 앞에 나서기보다는 처박히기를 좋아했다’는 은자(隱者)의 기질이 자연스레 그를 노장이나 불교의 세계로 이끈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그 이후부터 더욱 많은 시들에서 이러한 특징을 보였는데, 이번 시집은 그 집적이라 볼 수 있다. (중략) 신승근 시인은 과작(寡作)의 시인이다. 등단하여 시단에 나온 지 40년이 넘어가는 데도 그동안 펴낸 시집은 네 권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진지하게 시 창작에 임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일찍이 지용은 ‘시적 기밀에 참가하여 그 깊은 뜻에 들어서기 전에 아무 쓸모없는 다작이란 헛수고에 그칠 뿐이요, 자존(自尊)이 있을 리 없다’라고 경계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시답지 않은 시를 다량으로 쓰고 발표하는 시인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알기로 그는 시작(詩作)에 힘쓰기에 앞서 노장 사상이나 불교의 교리에 접하려고 많은 책을 읽었고, 사찰을 탐방하거나 선승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 체험에서 얻은 철리(哲理)가 내공으로 자리 잡고 자연스레 시화되어야 그는 비로소 한 편의 시를 완성시켰다고 짐작한다. 그런 시수(詩瘦) 때문인지 과작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난산 끝에 나온 시들이라 이번 시집에는 앞서 보았듯 서정과 조화를 이룬 철학적인 시들이 여럿 있다. 앞으로 그의 시가 더욱 심층적으로 전개되어 현대시의 전범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정선에서 농사와 시를 짓고 있는 신승근 시인의 삶은 아주 느린 삶이다. 삶이 느려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을 그는 그대로 시로 받아 적는다. 그의 시에 노장이나 불교의 느낌이 닿아 있는 것은 그런 연유일 것이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이 깜깜한 시대에 어쩌면 길을 비추는 등불 같은, 나침반 같은 그런 시집임에 틀림없다.